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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할아버지의 그림



몇 해 전 갑작스레 할머니를 여의시곤
할아버지는 한참 힘들어하셨다.

할아버지는 20년전 시골로 내려가신 후
할머니와 24시간 함께 지내시며 밭이며 산이며 무성히 일구시고 계셨던 만큼
홀로 건강한들 빈 자리를 감당하기 힘드셨을게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안방 뒤로 집을 덧대 작업실을 만드시고 이젤을 놓으셨다.
처음에는 캔버스의 빈칸을 색칠해 방안에 장식하게 해놓은 간단한 DIY 작품이었다.

강철같은 체력의 호통소리로만 기억되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벚꽃도 그리시고 보스턴테리어도 그리시고 팝아트도 색칠하시며 작품을 늘려가셨다.

올해부터는 인근 시 평생교육원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다.
가까운 읍에는 노인복지회관이 없어 혼자 한시간 이상 운전하셔야 하는 먼 길이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마다
할아버지의 작품을 찍어보내신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는 꽃과 나무와 정물을 색칠하실 때 어떤 기분일까.
단지 내 할아버지라서 흔해 보이는 문화센터의 연습그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까.
붓질 하나 물감 한 줄이 70년의 세월, 어쩌면 그 세월을 잊고 싶은 마음을 담은 건 아닐까.

볼 때 마다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곧 노인의 시대가 온다고,
일찍이 은퇴한 프리미엄에이지의 여가생활로 문화예술시장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까마득히 어린 나는 할아버지의 그림을 보면서
노인의 문화생활을 그저 신세좋은 사람들의 소일거리나 연금생활자의 고급취미로만 바라보지 않았나 돌아본다.

젊은 우리들에게도 수백만가지의 다른 삶과 의도가 있듯이, 노인들에게도 분명 그럴 것이다.

내 부모도 가끔은 버겁게 느껴지는게 솔직한 마음이지만,
시장과 트렌드를 바라보는 기획자의 시선이 아니라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지구메이트로서 노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By. 체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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